제암리 참살
제암리 교회
23인의 순국선열들이 묘
제암리 참살 박목월
무순 소리를 해 보았자
그들이 지른 제암리의 불은
이제 와서 끌 수 없고
교회 안에 모였던
스물 여덟명이 형제를
살려 낼 수 없다
왜병 중위가 이끄는
악마의 한 떼거리가 어진 백성을
교회당 안에 몰아 넣고
난사했다 살해했다
이유도 간단했다
우리 나라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제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형제가 제암리의 그 분들 뿐이라마는
나는 죽지만 이 어린 것만은 살려달라고
죽음의 창틈으로 내미는
천진한 어린 아기의
무심한 눈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기는 놈들이
~~
미친 악마 귀머거리의 악마
무슨 소리르 해 보았자
죄과는 죄과
상처는 상처
씻울 수 없다
왜족이 어떻다는 것을
그들의 불거진 이마와
튀어나온 관골과
미간에다 붙은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눈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제암리를 태운 불이
제암리만 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지금
우리는 의젓한
자주국의 백성으로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음은
협량하지 않기를 다짐하는
아량과 냉대와
내일의 찬란한 앞날이
우리를 밝게 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를 해보았자
그들이 지른 제암리에 불은
이제 와서 그들이
끌 수 없으며
죽음 당한 우리의 형제가
살아날 수 없다
뉘우치는 것은 그들의 덕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자주국의 백성으로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음은
지난 날보다 오는 날이 소중하고
어제보다 내일이 귀하고
과거를 되 새기기 보다
내일의 꿈에 부풀고
조국의 산하에
철철 넘쳐 흐르는
오늘의 햇빛이 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