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암리 3.1만세

제암리 사건의 전모

김 대령 2011. 2. 26. 21:05

 

고요한 마을 제암리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에 위치한 제암리는

속칭 '두렁바위'로 불리우는 조선 후기 전형적인 씨족 중심의 농촌 마을이었다

3.1독립운동 당시 전체 33가구 가운데 2가구를 제외하고는

순흥 안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불어닥친 일제의 잔악한 탑압의 회오리바람은

이곳을 죽음의 마을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한 세기를 더한 오늘 다시 찾아 온 평온과 함께 지난 날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

 

 

 

3.1독립운동 모습

 

 

유관순 열사

 

 

제암리 학살사건 개괄

 

제암리 학살사건은 3.1독립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 사건이다

제암리 학살 사건이 야기되기 까지는 그 이면에 당시의 정치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사건은 식민지하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거족적인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제암리주민들이 민족저항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는데 이를 진압하려는

일제의 정규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직전 제암리에서 형성된 기독교와 천도교가 수원 화성지역의

민족운동세력과 제휴하여 만세시위를 모의하여 학생 상인 농민 노동자등 일반시민과 함께 이 지역의 3.1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를 알게된 일제는 이 지역 민족운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천도교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제암리 교회에 이들을 모아 놓고 학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사건의 전모

 

3월31일 발안 장날을 기해 수천명이 참가한 대대적인 만세시위는

제암리의 기독교와 천도교 주민의 주도적역할로 이루어졌고 그후 지속적으로

야간 횃불시위를 준비하여 4월1일 남포등을 들고 지내산으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시위를 주도했던 제암리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가

3.1독립운동 당시 제암리에 살다가 발안으로 이사한 순사보 조희창 의해

일본경찰에 그대로 보고되어 3월21일 발안 장날 시위와

4월3일 화수리 수촌리시위가 벌어진 후 발안은 주요 경계대상 지역으로 지목되었고

이들의 검거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 제암리사건이다

 

 

 

 

 

 안종환 열사(1889~1919)

 

경기 제암리 출신

3.1운동 당시 천도교 수원교구 전교사로 활동하던중

수원교구에서 전개된 천도교측 시위에 주동적으로 참여하다가

제암리사건으로 당시 나이 30세로 순국했다(1919,4,15)

 

 

수촌리 만행 현장 재현

 

 

 망연자실한 미망인들

 

 

 

 일본군의 고문 형틀

 

 

 

 제암리 사건의 증언들

 

일본군 사건축소 은폐 증언

1. 4월15일 오후 3시반에 발안을 출발 제암리에 도착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20여명을

   교회당에 집합시키고 아리타 중위가 소요사건에 관해 질문을 하던 중

   한사람이 도망치려고 해서 그를 막는데 또한 사람이 의자를 들고 달려들어 칼로 찔렀다

2. 집단 반항 기세가 보이자 교회 밖으로 나와 병사들에게 사격명령해 모두 사살했다

3. 혼란 중에 서쪽 집에서 불이나고 거센바람을 타고 교회당에 옮겨붙어 연이어

    20여호가 불탔다

4. 중위는 부대를 둘로 나누어 피난 및 가재 운반에 종사하게 하고

   자신은 병사2명과 함께 뒷산에 올라 주위를 경계했다

 

전동례할머니

1. 낮 2시경 일본인 사사까와 순사보 조희창이 군인들을 데리고 마을에 들어오면서

   열다섯위로 남자들은 모두 교회로 모이라고 했다

2. 양쪽 방향에서 열댓 명씩 와서 교회안에 들어가고 오지 않는 사람은 불러왔다

3. 안종후 권사와 안진순 속장은 교회 뒷문쪽에 서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데

   둘에게 먼저 총을 쐈다

4. 북새통에 노경태는 탈출에 성공 산으로 도망쳤다

5. 교회 안과 밖에 짚을 늘어놓고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6. 바람이 세게불어서 교회아래 있던 집들에 불이 옮겨 붙었고 위쪽 집들은

   군인들이 다니며 불을 질렀다

7. 두 세사람이 교회 밖에 나와서 죽었는데 창자가 터져 나왔다

8. 강태섭의 부인은 울고 있는데 군인이 칼로 목을 쳐 죽였다

9. 홍권사 부인은 집을 수색하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

10. 고주리로 가서 천도교인 6명을 나무에 묶고 총살했다

11. 저녁에 사사끼가 일본인을 데리고 와서 교회 밖의 시체를 창으로 찔렀다

 

스코필드

1. 4월15일 이른 오후 군인들이 기독교와 천도교인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29명이 모이자 교회를 포위하고 창문으로 사격을 가해 모든 사람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

2. 몇 명이 탈출했으나 도중에 사살되었고 예배당 밖에서 도망치다 사살된

   시체 6구도 발견되었다

3. 남편 생사를 알려고 달려온 마흔 넘은 여인은 사살되고 19세 여인은 칼에 찔려 죽었다

4.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테일러

1. 4월15일 우후 군인들이 남자 교인 30여 명을 교회로 몰아넣고 총으로 쏜후 들어가

   총검과 대검으로 찌르고 불을 질렀다

2. 교회에서 떨어진 집은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방화했다

3. 살아 남은 여자교인이 희생자 12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4.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러 왔던 부인 두 사람도 살해되었다

5. 나머지 교회안에서 죽은 남자는 천도교인 25명이다

 

로이즈

1. 4월15일 정오가 지나 마을로 들어온 중위가 훈계할 것이 있다며

   주민들을 교회당에 불러 들였다

2. 모두 23명인데 11명은 기독교인이고 너머지는 천도교이었다

3. 불타는 중에 탈출한 기독교인 한 사람일 살육현장을 증언하였다

4. 중위가 기독교의 교지에 대해 묻자

   '안' 이라는 지도급 교인이 "성서는 이웃간에 친교할것과 하나님을 경회하고

   섬길것과 최후에 행한 대로 갚아준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중위는 "기독교인들이 행위가 그 가르침에 벗어났다"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5. 중위의 날카로운 구령이 세 번 있자 군인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6. 홍씨는 동망치다 발각되어 사살되고 다른 탈출자는 설교단 뒤에 나있던

    창문을 열고 달아나 살았다

7. 교회안에서 죽은 강이란 청년이 부인은 불타는 집에서 이불을 꺼내다가

    일본군에게 참수당했다

8. 홍씨 부인도 마을로 오던 중 총 두발을 맞고 그날밤 죽었다

9. 그날 건너편 마을 기독교인 6명도 집안에서 모아 놓고 사살했다

10. 군인들은 제암리 서쪽 20리 떨어진 마을로 가서 부인 한명을 사살했다

 

언더우드

1. 4월15일 오후2시경 군인들이 남자교인 30여명을 교회에 몰아 넣고

   대검과 총검으로 찌른후 교회를 불살랐다

2. 교회의 불이 번져 인근 가옥을 태웠고 건너편은 일본군이 불을 질렀다

3. 교인 집만 불을 질렀다

4. 40여호 중 4 5호를 제외하고 모두 불을 질렀다

5. 교회 건물 밖에서 시체 2구를 발견했다

 

테일러

1. 4월15일 오후 군인들이 남자 교인 30여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총으로 쏜 후 들어가

   총검과 대검으로 찌르고 불을 질렀다

2. 교회에서 떨어진 집은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방화했다

3. 살아남은 여자교인이 희생자 12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4.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러 왔던 부인 두 사람도 살해되었다

5. 나머지 교회안에서 죽은 남자는 천도교인 25명이다

 

 

 

제암리 교회가 있던 자리

잔혹한 일본군의 만행이 저질러졌던 이곳은 현제는 그때의 사건을 고이 간직하체

텅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잊지말자 그날을~

상기하자 그날을~

 

 

51

 

'여행 > 제암리 3.1만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암리 참살  (0) 2011.02.28
3·1 운동 순국기념탑 내용  (0) 2011.02.26
제암만세 현장을 가다  (0) 2011.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