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나의 이야기

땅콩밭에 애환

김 대령 2011. 9. 24. 23:07

10평 남짓한 주말농장을 4만원에 분양받아

무엇을 심을까 고심하다가

자주 가서 가꾸지는 못 할것 같아

손쉬운것을 생각하다가 마침 가지고 있던 땅콩을 심었다

 

씨앗을 가지고 있게된 계기는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추석이었다

집사람과 아이들 둘 이렇게 네식구가 경북 안동에 벌초를 하러갔다가

벌초를 끝내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어

그곳에서 20km정도 떨어져 있는 어릴적 살던 마을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유년시절 초등학교 교정과 마을을 한번 보여주면 좋을것 같아서다

고향을 떠나고 30여년도 더 지나 찾는 고향길

감회가 새롭다

예전엔 비포장 도로였는데

도로가 포장이 되어있고 약간의 지형도 변한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몇십분 달려 도착한 안동군 길안면 묵계리 묵계초등학교

 

 

 

 

 

어릴적에도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교정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무들이 더욱 무성하게 우거져있다

그 밑에서 가을 운동회때 먹었던 고구마랑 밤도 생각나고

달리기에서 거의 놓치지 않고 상품으로 노트와 연필을 탓던 일

모래 바닥에 무언가 열심히 그리며 놀았던 일도 생각나고~~

교정으로 들어가려니

교문이 커다란 쇠사슬로 묶여져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없어 초등학교가 분교로 다음엔 폐교되고

급기야 업자에게 팔렸단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모교를 거닐게 하고 싶었는데

담 넘어에서 기웃기웃 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모교라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참 씁쓸하다

 

 

 

학교에서 나와서 강을 건너면

 상리 중리 하리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데

그중 상리에서 아주 어릴적에 살았었는데

할머니가 고추밭에 잡초 제거 하고 있을때

밭 밑에서 배고프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도 기억난다

그땐 동네가 거의 감나무 투성이었는데

지금은 사과 나무가 마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마 돈의 유혹에 감나무를 베어내고 사과나무로 바꾸 심었으리라

 

또 이런 기억도 있다

다섯 여섯살쯤 되었을 어느날

또래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붕어를 한마리 잡았다

붕어라야 고사리손으로 잡은것이 얼마나 크겠냐만

그땐 손 한가득 들어오는 그런 놈이었다

아마 지금 그 고기를 본다면 고기 새끼정도가 아니었을까

여하튼 스스로가 장하게 생각되어

집에 가지고 와서 세숫대야에 담그어놓고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이웃집에 결혼한지 얼마 안된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도련님 무얼하세요"

"..."

'나에게 도련님이란다..ㅎㅎㅎ'

도련님이란 말에 부끄러워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기억

그때까지 도련님이란 소릴 처음 들어보았다

가세가 기울어 가난했지만

안동김씨 양반집안이라

결혼한지 얼마안된 아주머니가

저에게 도련님이란 호칭으로 불러준게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때의 부드럽게 들려오던 "도련님"이란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것 같다...ㅎㅎㅎ

부끄러워 얼굴은 들지 못했지만

아주 기분좋고 활홀하게 들렸던

"도련~님~"

아직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것을 왜일까?

~~

 

 

거기서 4km정도 더 가면 고란이란 동네가 나오는데

초등학교는 그곳에서 다녔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온통 사과밭이다

유년시절엔 마을 전체가 대추나무 투성이었는데

커다란 대추나무가 왜 그리 많았던지

이맘때면 거리에 널린게 대추였다

한번은 그 풋 대추를 따먹고 탈이나서

어머님이 양밥이란것을 했다

약간은 미신적이지만

그땐 그것이 최고였던것  같다

식칼과 박바가지에 물을 떠서

입에 물을 머금고 뿜어내기도 하고

칼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약국은 4km떨어진 묵계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말이 약국이지 약사가 있는것도 아니다

선교사 한분이 집에 몇가지 약을 사다가 놓고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것이 고작이었다

거기서 4km를 더가면 길안면 소재지가 있었지만

거기도 변변히 의원이나 병원은 없었고

겨우 조그만 약국이 하나 정도 있었던것 같다

그러니 아프면 약을 사먹는다는 생각은 못하고

어머님이 해주시는 양밥이 고작이요

그냥 몸으로 병을 버텨내어야 했다

차도 없지 몇개의 산을 넘고 몇개의 강을 건너

8km의 거리를 간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죽을 병이 아님 그냥 몸으로 병을 이겨내어야 했던

그 어려웠던 시절을 살았던 고란리~~

 

옛날 살던 집을 기웃거리자 60대 초반의 주인이 나온다

"어릴적 제가 살았던 집이라 한번 들렀습니다"

"그래요"

고란에서 1~2km 산골로 더 들어가면 모치골이 있었다

거기 사시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했단다

사과 농사를 한다기에

사과를 한박스 샀다

시세보다 많이 준다고 한다

굵기도 굵고 맛도 아주 좋다

고맙다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오다가

길안면 천지동 초입에서 땅콩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나 5천원을 주고 땅콩 한되를 샀다

그것을 집에 돌아와 양파망에 담아 걸어 두었는데

그것을 씨앗으로 삼았다

 

 

 

 

가끔씩 들러 잡초도 제거하고

흙도 북돋우어 주고하였는데

누가 그런다

땅콩을 뽑고 무우를 심으라고

그것도 좋을것 같아

날을 잡아 땅콩을 캐러 갔다

두어말은 캘것을 기대하며~~

헌데 땅콩을 보니 누군가가 포기만다 죄다 손을 대었다

땅콩 순은 그대로 둔채 땅콩만 잘라 갔다

손을 타지 않은 땅콩 포기가 거의 없다

누가 이렇게 했을까

궁금증이 일지만 알수는 없다

손만 타지 않았어도 좀더 수확 할수 있었을텐데

겨우 3대정도 수확을 했다

아직 여물지 않는것은 다시 묻어 두었다

가을 가믐 때문에 땅도 딱딱하고

무우도 될것 같지 않다

하여 포기하고 땅콩 순은 그냥 두고

밑둥지를 파고 땅콩만 잘르고

흙은 다시 덮었다

나중에 다시 수확하러 오기로 작정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본전은 나오질 않는다

에구 그냥 사서 먹을걸~~

임대료  사만원 비닐과 작업도구 만오천원

오며 가면 잡초 제거한 인건비

이렇게 농사지어서는 집안 거덜나겠다..ㅎㅎㅎ

 

가끔 귀향하여 농사나 지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농사는 아무나 짓나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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