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崔容信, 1909년 8월 12일 ~ 1935년 1월 23일)은 경기도 화성군 샘골(현재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 봉사한 농촌운동가이다. 소설가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의 모델이 되었다.
학업
두남리는 개신교의 영향으로 여성이 학문을 하는 것에 대해 너그러웠으므로,열 살 때인 1918년 두남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20년 이화학당, 배화학당과 더불어 유명한 개신교 학교인 원산의 누씨 여자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누씨 여자보통학교에서 누씨는 선교사 루시 컨님김(Lucy Cuninggum)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당시 최용신은 가난으로 밥을 먹지 못하는 결식학생이었지만, 1924년 가장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누씨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성서교사인 전희균 목사가 "성서과목에서 매번 만점을 맞는 학생"이라고 기억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다.
농촌활동
농촌활동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최용신은 민중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농촌운동에 뜻을 두었다.
1929년 여자협성신학교(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재학중 강원도 포항 옥마동과 황해도 수안군 원곡면 용현리에서 농촌운동을 했으며, 1931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의 파견교사로 샘골에서 농촌운동을 시작했다.
감리교 전도사인 그는 교회 건물을 빌려서 성서, 수예, 한글, 집안 살림, 재봉 등 실용성이 있는 과목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32년 강습소 인가를 겨우 받자, 마을 사람들이 몇 년이나 걸려서 모은 귀한 돈 300원 중 150원으로 건축을 시작하였다. 덕분에 1933년 1월 15일 강습소 낙성식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일제는 재학생 110명 중 50명을 강제로 수업을 못 받게 하는 탄압을 했으나, 최용신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가르침으로써 이를 극복해냈다.
일본유학과 죽음
1934년에는 일본 감리교에서 세운 고베여자신학교(神戸女子神学教) 사회사업과에서 유학을 했으나 과로로 인해 불과 3개월 만에 각기병 등 여러 가지 병이 나서 더 이상 공부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과로와 장중첩증(장이 꼬이는 병)으로 1935년 강습소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죽었다.
기념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2007년 10월 안산 상록구에 최용신 기념관이 세워졌고, 그 주위에 있는 도로의 이름도 용신로라고 불린다